
퇴근하고 국내 대형 건설사 실적을 뜯어보다가 멈칫한 적이 있다. 현대건설 매출 32조 원. 그런데 2024년 영업손실 1조2천억 원. 매출이 32조인데 적자다.
같은 해 SK하이닉스는 매출 66조에 영업이익 23조 원. 이익률 35%.
숫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건설사는 왜 이렇게 돈을 못 버는 구조인가. 그리고 이건 한국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건설업 자체의 문제인가.
국내 건설사 실적: 32조 매출에 원가율 93%
2024~2025년 국내 주요 건설사 실적을 보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매출 18.6조에 영업이익 1조 원으로 이익률 5.4%. 업계 최상위권이다. GS건설은 원가율 안정화 이후 3.7%, 대우건설 3.8%, DL이앤씨 4.3%를 기록했다. 현대건설은 2024년 대규모 해외 플랜트 손실을 일시 반영하며 -3.7%로 마쳤다가 2025년 1분기 흑자 전환했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이 있다. 영업이익률 3%가 '긍정적' 기준선이다. 3%가 목표다.
이걸 만드는 핵심 변수가 원가율이다. 주요 건설사 매출원가율은 포스코이앤씨 95.4%, 현대건설 93.5%, GS건설 90.7%, 삼성물산 건설 89.4%로 분포한다. 매출 100원을 만들면 원가로만 88~95원이 나간다. 여기서 판관비까지 빼면 남는 게 얼마인지 짐작이 간다.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을까.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봐야 한다.
EPC 도급의 인센티브 구조: 수주가 목표인 조직에서 이익이 나기 어려운 이유
건설사의 핵심 사업 방식은 EPC다.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을 묶어 수주하고, 공사가 끝나면 대금을 받는다.
이 구조의 작동 원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수주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면 조직 내 모든 KPI가 자연스럽게 수주금액을 향하게 된다. 수주가 크면 팀 실적이 좋아지고, 경영진의 목표치가 채워지고, 투자자에게 성장을 증명할 수 있다.
문제는 수주금액이 이익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설 프로젝트는 착공부터 준공까지 보통 2~5년이 걸린다. 수주 시점에 예측한 원가와 실제 원가는 다르다. 인건비가 오르고, 자재 가격이 오르고, 현장 변수가 생긴다. 공사 초반에는 매출도 잡히고 이익도 어느 정도 나온다. 문제는 준공이 가까워질수록 잔여 원가가 한꺼번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의 2024년 대규모 적자가 그 사례다. 해외 플랜트 현장 하나의 손실을 일시에 반영하면서 23년 만의 적자가 됐다. 업계에서 '빅 배스'라고 부르는 작업이다. 경영진 교체 시점에 잠재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방식. 이런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구조적 취약함을 방증한다.
루프를 정리하면 이렇다. 수주 경쟁이 치열할수록 입찰 단가가 낮아지고, 단가가 낮을수록 마진이 줄고, 마진이 줄면 더 많은 수주로 외형을 채워야 회사가 돌아간다. 외형 성장과 수익성이 반비례하는 구조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센티브도 당연히 '수주를 더 많이'를 향하게 된다.
해외 건설사는 다른가: VINCI가 보여주는 이익 구조의 비밀
같은 건설업인데 해외 대형사들은 다를까.
VINCI는 2024년 그룹 전체 매출 107조 원(약 716억 유로)에 영업이익률 12.5%를 냈다. 국내 건설사와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숫자가 달라진다.
VINCI의 건설 부문만 따로 떼면 이익률 4.1%다. 국내 최상위권 삼성물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건설 자체로 벌어들이는 마진은 어느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VINCI가 높은 이익률을 내는 이유는 건설을 잘해서가 아니라, 콘세션 사업 덕분이다.
VINCI의 콘세션 부문은 프랑스 고속도로 4,400km와 전 세계 45개 공항을 운영한다. 통행료와 공항 이용료를 매일 반복해서 받는 구조다. 계약 기간은 20~75년. 이 부문이 그룹 전체 매출의 16%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 기여는 65%에 달한다.
스웨덴의 Skanska는 건설 부문 이익률 3.5%다. 미국의 Fluor는 매출 22조 원에 이익률 2.8%. 글로벌 EPC 전문사도 결국 마진 구간은 비슷하다. Bouygues는 건설 사업 마진이 3.5% 수준이고, 모회사 전체 이익률이 4.5%로 올라가는 구조다.
요점은 이것이다. 건설로만 먹고사는 회사는 글로벌 어느 곳이나 마진이 낮다. 높은 이익률을 만드는 건 반드시 건설 '위에' 올려놓은 다른 사업이다.
페로발(Ferrovial)은 그 극단적 사례다. 캐나다 407 ETR 고속도로, 미국 텍사스 관리도로 등을 운영하는 콘세션 비중을 계속 높이면서, 건설 부문의 EBIT는 40%를 넘는다. 이 회사는 이제 '건설사'라기보다 '인프라 운영사'다.
SK에코플랜트: 건설사 탈출 실험의 현재 진행형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가 SK에코플랜트다.
2025년 기준 이 회사의 반도체 관련 매출 비중은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SK트리켐, SK레조낙 등)을 편입했고, 반도체 제조 공정 가스·소재를 직접 공급한다. 하이닉스 청주 M15X,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EPC도 챙겼다.
2025년 연간 매출 12.2조 원, 영업이익 3,159억 원. 전년 대비 매출 39.6%, 영업이익 39.8% 동시 증가. 2026년 1분기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9%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9,314억 원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야 한다. SK에코플랜트의 이익은 건설 EPC에서 나는 게 아니다. 주택·건축 포함 전통 건설 부문에서는 여전히 손실이 발생했다. 이익은 반도체 소재 판매, 가스 공급, 모듈 재활용에서 나온다.
SK에코플랜트가 잘 되는 이유는 건설사가 잘 돼서가 아니다. 건설사의 껍데기를 벗어나 반도체 소재·유통 기업이 됐기 때문이다. 2026년 1분기 수치를 연환산하면 하이테크 매출이 전체의 97% 수준이다. 이미 '건설사'라고 부르기 어렵다.
건설사가 이익 구조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국내외 데이터를 다 놓고 보면 공통된 패턴이 보인다.
건설 EPC 자체로는 이익률의 구조적 상승이 어렵다. 발주처가 있고, 경쟁 입찰이 있고, 외부 원가 변수가 있는 한 마진의 천장은 낮다. 글로벌 어느 건설사도 EPC 단독으로 10%대 이익률을 내지 못한다.
이익률을 높인 회사들은 예외 없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했다. 반복 수익이 발생하는 자산을 보유했거나(VINCI, Ferrovial), 건설 자체를 다른 산업으로 교체했거나(SK에코플랜트).
전자는 콘세션·디벨로퍼 모델이다. 시공 후 자산을 보유해 운영 수익을 가져가는 방식. 초기 자본이 크고 규제 허들이 높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수십 년짜리 반복 수익이 생긴다. 후자는 탈건설 전환이다. 건설 능력을 발판 삼아 더 높은 마진의 산업으로 이동하는 방식.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지금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삼성물산은 반도체 공장 수주로 상대적으로 좋은 이익률을 유지하지만 그룹사 발주 의존이라는 한계가 있다. 현대건설은 원전, 데이터센터로 고부가 수주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기존 EPC 중심 구조 안에서의 포트폴리오 조정 수준이다.
건설사가 하이닉스가 될 수 있냐는 질문으로 돌아오면 — 틀린 질문일 가능성이 높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건설사가 건설업 이익 구조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걸 넘어서기로 결정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SK에코플랜트가 그 실험에서 살아남는다면, 그게 국내 건설업의 다음 방향이 될 수 있을까.
발행 태그: #건설사수익구조 #영업이익률 #EPC도급 #원가율 #VINCI #SK에코플랜트 #건설업투자 #인프라비즈니스 #건설주분석
이 글은 투자 참고용 정보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결정은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