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시이찌를 들른 건 딱히 기념일도 아니었다. 종합건강검진을 하고 기분 좀 내고 싶었다. 그냥 오늘 점심만큼은 제대로 먹고 싶다는 생각 하나였다. 요즘 런치 오마카세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15~20만 원대 고급 코스 말고,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가성비 스시 오마카세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스시이찌는 그중에서도 이미 후기가 쌓인 곳이다.
1. 첫인상 — 조용하고 단정한 공간

문을 열기 전부터 분위기가 읽힌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すしいち」 붓글씨 간판, 흰 자갈이 깔린 입구, 작은 안내판. 요란한 게 없는데 단정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밝은 나무 결의 긴 카운터석이 이어진다. 셰프 한 분이 그 너머에서 조용히 초밥을 쥐고 있고, 손님들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속도로 먹는다. 오마카세 특유의 긴장감보다는 혼자 책 읽으러 가는 카페 같은 조용한 집중감에 가깝다.
2. 기본 세팅 — 시작 전부터 알 수 있는 것들

자리에 앉으면 검은 원형 접시에 생강과 생와사비가 세팅된다. 옆에는 초간장에 절인 참치 몇 점이 담긴 작은 그릇이 함께 나온다. 코스가 시작되기 전에 입을 열어두는 역할이다.
생와사비는 튜브 제품과 결이 다르다. 코를 찌르는 자극보다 향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서서히 퍼지는 매운맛이 있다. 이 차이가 초밥 한 점마다 조용히 쌓인다.
3. 코스 라인업 — 한 점씩 짚어보기
광어초밥

코스의 첫 타자는 광어다. 얇게 썬 결이 쫄깃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천천히 올라온다. 광어 자체가 개성이 강한 생선은 아니지만, 밥 온도와 간의 균형이 맞으면 얼마나 맛있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점이다.
아귀간이 올라간 새우초밥

이날 코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점. 새우의 탱글한 단맛 위에 안키모(아귀간)가 올라가 있는데, 크리미하고 농후한 안키모가 새우의 단맛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단독으로 먹었을 때보다 훨씬 복합적인 맛이 난다. 둘이 부딪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받쳐주는 조합이었다.
오징어 초밥, 가리비 초밥


오징어 초밥과 가리비 초밥이로 나왔다. 처음엔 칼집 낸 오징어에 매실을 올린 초밥이 나왔다. 두 번째는 살짝 구운 가리비를 노리로 감싼 군함 형식이다. 오징어 초밥은 씹는 감이 살아 있고, 가리비 구이는 겉면에 불향이 더해지면서 단맛이 진해진다. 개인적으로는 가리비 초밥이 더 기억에 남았다.
삼치 초밥

등 푸른 생선 특유의 풍미가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기름지지 않았다. 삼치는 특유의 냄새를 걱정하기 쉬운데, 손질이 제대로 된 건지 전혀 없었다. 깔끔하고 담백한 편이라 생선 초밥 입문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고등어 초절임 초밥

식초에 절인 고등어를 노리와 함께 감싼 형식이다. 절임의 산뜻한 새콤함이 고등어의 진한 풍미를 잡아줘서, 먹고 나면 오히려 깔끔하다. 전통 에도마에 스타일에 가장 가까운 한 점이었다.
참치 초밥

붉고 투명한 참치 한 점. 간장 없이 그냥 먹어도 될 만큼 간이 배어 있었다. 참치 특유의 짧고 강한 감칠맛이 있다가 밥의 단맛으로 마무리되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다.
아나고 초밥

달콤짭조름한 타레 소스를 바른 아나고(붕장어). 부드럽고 촉촉한데 무겁지 않다. 코스 막바지에 나와서 포만감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역할을 한다.
4. 우동, 후토마키, 그리고 쿠폰 이벤트
우동

초밥 코스 중간에 미니 사이즈 우동이 한 그릇 나왔다. 나루토 어묵이 올라간 맑은 육수인데, 지금까지 먹은 초밥의 맛을 리셋해주는 역할이다. 양은 적지만 목적이 분명한 한 그릇.
후토마키


셰프님이 나무 도마에 후토마키를 통째로 들고 나왔다. 단면을 보면 참치, 광어, 새우, 계란말이, 오이, 파프리카, 우엉 등이 층층이 들어가 있다. 한 입에 넣기 버거운 사이즈지만, 크게 베어 물면 여러 재료의 맛이 한꺼번에 터진다. 세심하게 잘라가며 먹는 것보다 그냥 크게 한 입이 훨씬 맛있다.
단새우 안키모 — 쿠폰 이벤트

네이버 예약 쿠폰을 쓰면 추가로 나오는 단새우 안키모다. 단새우를 노리로 싸고 안키모를 더한 구성인데, 앞서 나온 새우+안키모 초밥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한 맛이다. 쫄깃한 단새우와 녹진한 안키모의 조합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쿠폰 챙길 이유가 충분하다.
5. 마무리 — 매실차와 카스테라

마지막은 매실차 한 잔과 일본식 카스테라 한 조각이다. 묵직한 코스가 끝나고 이 조합이 나오니 입안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카스테라는 촉촉하고 달지 않아서, 매실차와 함께 마시면 마침표로 딱 맞다.
총평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붙으면 자동으로 비싸다는 인식이 생기는데, 스시이찌 런치는 그 공식을 조금 흔들어놓는 곳이다.
재료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고 정확했고, 코스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거창하게 감동을 받기보다, 편하게 잘 먹고 나왔다는 느낌. 그게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만, 식사시간이 길게 필요한 사람은 피하자. (내가 예약한 1시 반 타임은 2시 10분까지 식사를 마쳐야 했다.)
가성비 스시 오마카세를 고민하고 있다면 스시이찌 런치를 먼저 가보는 걸 권한다. 다음엔 저녁 코스로 다시 올 것 같다.
식당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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