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하고 나서 SaaS 관련 투자 얘기를 찾아보다 보면 맨날 두 가지 극단적인 얘기만 나온다. "AI가 SaaS를 다 죽인다"거나, "걱정 말라, 실적은 멀쩡하다"거나.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둘 다 불완전하다. 어떤 기업을 골라야 하는지는 여전히 안 알려준다. 그래서 기준 세 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기업들을 추려봤다.
수익 모델이 이미 바뀌고 있나 — per-seat에서 usage·outcome으로
첫 번째 기준은 가격 구조다.
per-seat 모델의 문제는 단순하다. AI 에이전트가 직원 5명 몫을 하면, 기업은 시트 5개를 살 이유가 없다. 실제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봐야 하는 건 이 기업이 지금 어떻게 돈을 받고 있느냐다.
usage-based는 쓴 만큼 낸다. AI 워크로드가 늘면 매출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outcome-based는 더 나아가서 "문제가 해결됐을 때" 돈을 받는다. 아직 전면 적용된 곳은 드물지만, 이쪽으로 가는 방향은 분명하다. 아웃컴 기반 가격 모델을 쓰는 기업 비중은 2025년 2분기 2%에서 18%로 뛰었고, 37%의 기업이 1년 안에 가격 모델을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준에 맞는 기업들을 보면, Snowflake가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다. 처음부터 쓴 만큼 내는 구조다. AI 관련 워크로드가 비AI 워크로드보다 3~4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소비 기반 가격 구조 덕분에 고객의 AI 사용량 증가가 곧바로 매출 성장으로 연결된다. Salesforce는 Agentforce를 통해 아웃컴 기반으로 전환 중이다. Agentforce ARR은 출시 이후 169% 성장해 8억 달러를 넘겼고, 29,000건 이상의 딜을 클로징했다. Datadog은 모니터링 인프라 특성상 AI 워크로드가 늘수록 자동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구조다.
고객 데이터가 플랫폼 안에 쌓이는 구조인가
두 번째 기준이 핵심이다.
기능만 파는 기업은 AI로 대체된다. 데이터가 쌓이는 기업은 AI의 기반이 된다. 이 차이가 전부다.
고객의 데이터가 플랫폼에 축적되면 두 가지 일이 생긴다. 첫째, 외부 AI 에이전트가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 둘째, 그 플랫폼의 AI는 범용 모델보다 정확하다. 수십 년치 고객 행동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과 처음 만난 모델은 비교가 안 된다.
Snowflake는 이 기준을 가장 잘 충족한다. 데이터를 바깥으로 꺼내지 않고 플랫폼 안에서 AI를 돌리는 구조다. AI 에이전트와 추론이 거버넌스된 데이터가 있는 곳에서 직접 실행되기 때문에 데이터 이동에 따른 지연과 보안 리스크가 없고, Snowflake는 그 컴퓨팅 사용량에서 매출을 거둔다.
Salesforce는 Data Cloud에 22조 건의 레코드를 쌓고 있다. Q1에만 Data Cloud가 22조 건의 레코드를 처리했고, 전년 대비 175% 증가했다. 이게 그냥 저장소가 아니라 Agentforce가 돌아가는 기반이다. MongoDB는 벡터 데이터베이스 쪽에서 이 역할을 맡고 있다. AI 앱을 만드는 개발자들이 임베딩 데이터를 MongoDB에 저장하고 검색한다. Atlas Vector Search는 GPT-4 같은 AI 모델이 사용하는 벡터 임베딩을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게 해주며, MCP 서버를 통해 AI 에이전트가 데이터베이스 스키마를 이해하고 직접 쿼리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ServiceNow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수십 년치 엔터프라이즈 워크플로 데이터가 쌓여 있고, Now Assist가 그 위에서 작동한다. AI가 뭘 해야 하는지 판단해줘도, 레거시 시스템 위에서 실제 실행하는 건 ServiceNow의 몫이다.
실제 분기 매출이 주가 하락을 정당화하는가
세 번째 기준은 숫자다. 공포 기반 내러티브인지 실제 수익 훼손인지는 공시로만 확인된다.
올해 초 SaaS 주가가 폭락했을 때 많은 기업의 실적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Datadog을 보면 Q1 2026 매출이 전년 대비 32% 성장한 10억 6백만 달러를 기록했고, $10만 이상 ARR 고객은 21% 늘어 4,550곳에 달했다. 주가는 하락했지만 실적 방향은 반대였다.
ServiceNow도 마찬가지다. Q1 2026 구독 수익은 전년 대비 22% 성장했고, cRPO는 22.5% 성장한 126억 달러를 기록했다. Snowflake는 Q4 제품 매출 30% 성장, RPO 42% 성장을 기록했고, NRR이 125%라는 것은 기존 고객들이 전년보다 25% 더 많이 쓰고 있다는 뜻이다.
MongoDB는 Atlas 매출이 전년 대비 30% 성장했고, Atlas가 전체 매출의 75%를 차지했다. Salesforce는 FY2026 전체 매출 415억 달러, 전년 대비 10% 성장, RPO 14% 성장을 기록했다.
공통점이 있다. 주가는 내렸는데 RPO, NRR, ARR은 올라가고 있다. RPO는 이미 계약된 미래 수익이고, NRR 125%는 기존 고객이 더 많이 쓰고 있다는 뜻이다. 실적이 주가 하락을 정당화하지 않는 상황이다.
세 가지 기준을 다 충족하는 기업들
기업 리스트를 요약하면 이렇다.
ServiceNow는 AI 에이전트의 실행 계층이라는 독점적 포지션을 갖고 있고, Salesforce는 데이터 축적과 아웃컴 기반 전환을 동시에 증명하고 있으며, Snowflake는 usage 기반 구조가 AI 워크로드 증가와 직접 연결된다. MongoDB는 AI 앱 인프라의 데이터 레이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Datadog은 AI가 늘어날수록 모니터링 수요가 따라오는 구조적 수혜를 받는다.
시장이 이 기업들을 같은 바구니에 넣고 팔았다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기준 없이 내러티브만 따라가면 좋은 걸 싸게 팔거나, 나쁜 걸 비싸게 사게 된다. 결국 공시 읽는 게 답이다.
재무 비교 — GAAP 영업이익으로 본 4개 기업

Salesforce — 영업이익 회복이 가장 드라마틱하다. FY2023 $1.0B에서 FY2025 $7.2B, 3년 만에 7배. 2023년 대규모 구조조정(인력 10% 감축) 효과가 FY2024부터 마진에 직접 반영됐다. 매출 성장률은 둔화됐지만 수익성 전환은 확실하다.
ServiceNow — 4개 기업 중 가장 안정적인 궤적. 매출과 영업이익이 같이 성장하는 전형적인 성숙 플랫폼 구조다. GAAP 영업이익률이 꾸준히 13~14%대를 유지하면서 성장도 놓치지 않고 있다.
Snowflake — 매출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GAAP 영업이익은 3년 내내 적자다. FY2025에 적자폭이 가장 컸다가(–$1.46B) FY2026에 –$0.88B으로 줄어드는 중이다. 단, non-GAAP 기준으로는 영업이익률이 10%를 넘겼다. 주식보상비용(SBC)이 손익을 크게 끌어내리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Datadog — 규모는 가장 작지만 성장률은 빠르다. GAAP 영업이익이 거의 0선 근처에서 플러스/마이너스를 오가고 있다. Snowflake와 마찬가지로 SBC 비중이 높아 GAAP 기준으로는 적자처럼 보이지만, non-GAAP 영업이익률은 20% 이상이다.
GAAP과 non-GAAP의 차이를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하는 게 Snowflake와 Datadog이다. 두 기업 모두 주식보상비용이 연간 수억 달러 규모라 GAAP 기준 영업이익만 보면 실제 사업 체력을 과소평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