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6일 지구의 날을 맞아, 나는 성수동 공방에 앉아 바늘을 쥐고 있었다.
사실 운동화는 그냥 사면 된다. 쿠팡에서 클릭 몇 번이면 다음 날 문 앞에 온다. 그런데 나는 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실 색깔 맞춰가며 구멍 난 신발을 꿰매고 있었을까. '다닝(Darning)'과 '수선'이라는 단어가 요즘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지구의 날이 말하는 것 — '우리의 힘, 우리의 지구'
올해 지구의 날 슬로건은 "Our Power, Our Planet(우리의 힘, 우리의 지구)"이다. 1970년 미국 시민 2천만 명이 거리로 나온 데서 시작한 이 날은, 지금은 매년 4월 22일 전 세계가 함께하는 환경 캠페인의 날이 됐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매년 이맘때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 장바구니 챙기고, 텀블러 쓰고, 분리수거 잘 하고. 다 맞는 말인데 뭔가 허전하다. 일회성 이벤트 같다는 느낌. 그러다 이번에 성수동 공방의 수선 모임 공고를 봤다. 지구의 날 취지를 살리되, 내 손으로 뭔가 직접 만드는 것. 그게 당겨졌다.
나이키 베이퍼맥스의 구멍 — 다닝(Darning) 기법으로 살리기

나는 러닝과 요가를 주로 한다. 러닝할 때 신는 신발은 따로 있고, 나이키 에어 베이퍼맥스는 평소에 신는 건데 앞코 메시(니트) 부분에 구멍이 났다.
보통이면 그냥 버린다. 아니면 수선집에 맡긴다. 그런데 이번엔 직접 해보기로 했다.
'다닝(Darning)' 은 유럽의 전통 수선 기법이다. 구멍 난 곳을 꿰매거나 짜깁는다는 뜻이며, 세로 실과 가로 실을 조심스럽게 교차시켜 천을 다시 짜듯 메우는 방식이다. 핵심은 원단의 조직을 다시 만들어준다는 것. 그냥 때우는 게 아니라 천이 다시 짜여지는 것이다.
신발 앞코처럼 입체적인 부분은 둥근 돌이나 손을 안에 받쳐서 작업한다. 나는 공방에 있는 손을 넣어서 했다. 실 색깔은 원단의 검정-보라-파랑 그라데이션에 최대한 맞췄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티가 많이 나지 않으면서도 살아났다.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실전 Tip: 플라이니트나 니트 소재 신발은 다닝이 잘 맞는다. 실 색깔은 완벽히 맞출 수 없으니, 비슷한 계열 색으로 자연스럽게 블렌딩하는 게 낫다. 억지로 맞추려다 오히려 이상해진다.

부디무드라 요가 바지 — 블랭킷 스티치(Blanket Stitch)로 주머니 살리기

요가 바지는 부디무드라 제품이다. 주머니를 보부상처럼 쓰는 나의 습관 때문에 양쪽 주머니 입구 근처가 힘을 많이 받아서 구멍이 났다. 천이 완전히 뚫렸다기보다 올이 풀리면서 작게 벌어진 형태였다.
이건 '블랭킷 스티치(Blanket Stitch)' 로 처리했다. 구멍 가장자리를 따라 실을 일정한 간격으로 감아서 가장자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방식이다. 담요 테두리를 처리할 때 쓰는 기법이라 이 이름이 붙었다. 홈질이나 감침질보다 구멍 가장자리를 확실하게 잡아주는 게 장점이다.

흰색과 민트 계열 두 가지 실을 섞어서 작업했더니, 오히려 포인트가 생겼다. 안 보이게 고치려다 어쩌다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이 됐다.
최근 순환패션의 트렌드로 '보이는 수선'이 주목받고 있다. 수선을 굳이 숨기지 않고, 오히려 나만의 이야기와 특별함을 전하는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다 하고 나서 보니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게 내 손으로 고쳤다는 흔적이 남아서 더 애착이 간다.

실전 Tip: 블랭킷 스티치는 구멍이 작을 때 특히 효과적이다. 일정한 간격 유지가 핵심인데, 처음엔 연필이나 지워지는 열감펜?으로 간격을 표시해두고 하면 훨씬 수월하다.
새걸 사고 버리는 것에 신물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이걸 꼭 환경 때문에 했다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물론 그 취지로 시작한 모임이고, 나도 그 부분에 공감하지만.
더 솔직하게는,
"내 물건을 그냥 버리는 것에 피로감이 쌓였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것의 반복. 한 번 사면 책임지고 쓰자는 마음이 최근 들어 더 강해졌다.
특히 운동 용품은 직접 쓰면서 맞춰나간 것들이 있어서 아무 신발, 아무 바지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사물과 관계를 맺고, 그것들이 다채롭게 모여 추억이 된다. 베이퍼맥스를 신고 다닌 날들이 있다. 부디무드라 바지 입고 간 요가 수업들이 있다. 그 흔적을 굳이 빨리 지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
마무리하자면, 이날 공방에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거였다.
"이게 특별한 일이 아니어야 하는데."
수선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들의 당연한 루틴이 되면 어떨까. 지구의 날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일상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것. 앞으로도 수선이라는 방식으로 내 물건들을 계속 살려나가 보려 한다. 다음엔 어떤 게 구멍 날지,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