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트 갈 때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작년보다 물건 수는 비슷한데 계산대에서 나오는 숫자는 다르다. 금리는 올라 있고, 대출 이자는 늘었고, 그렇다고 월급이 그만큼 오른 것도 아니다. 이게 그냥 경기 탓인가, 아니면 뭔가 구조가 바뀐 건가 싶을 때 이 책을 읽었다.
찰스 굿하트와 마노즈 프라단이 쓴 『인구 대역전』.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수 있다.

지난 40년 저물가의 진짜 이유 — 노동 공급 폭증의 역사
책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전 세계 물가는 왜 그렇게 안정적이었을까.
경제 교과서는 중앙은행 덕분이라고 가르친다. 연준이 금리를 잘 조절하고, 인플레이션 타기팅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굿하트는 이걸 정면으로 반박한다. 중앙은행이 잘한 게 아니라, 그냥 거대한 순풍을 타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그 순풍의 정체는 노동 공급의 폭발적 증가다. 1970년대부터 2010년 사이에 전 세계 노동 공급을 사실상 두 배로 늘린 다섯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동했다.
첫째,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일할 나이가 됐다. 둘째, 여성들이 대규모로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셋째,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부양해야 할 어린 인구가 상대적으로 줄었다. 넷째,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수억 명의 저임금 노동력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됐다. 다섯째, 동유럽이 소련 붕괴 이후 시장 경제에 합류했다.
공급이 두 배가 됐으니 임금이 오르기 어려웠고, 물건 값도 안정됐다. 중앙은행은 그 흐름 위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굿하트의 표현대로 하면, 정책 입안자들은 인구 구조가 만들어준 환경에서 공을 가져간 셈이다.
중국이라는 변수 — 그리고 그 변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굿하트는 중국을 단순한 사례로 다루지 않는다. 책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주제가 중국이다.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은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공급 충격이었다. 수억 명의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며 제조업 노동력이 됐고, 그 노동력은 서방 기업들이 상상도 못 했던 낮은 임금으로 공급됐다. 중국이 만들어낸 저렴한 공산품이 전 세계 소비자물가를 눌렀다. 이게 '차이나 쇼크'의 디플레이션 효과다.
문제는 그 중국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감소세로 돌아섰고, 농촌에서 도시로 끌어올 잉여 노동력도 고갈돼 가고 있다. 임금은 오르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이 공급했던 디플레이션 압력이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도와 아프리카가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본다. 굿하트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결정적인 반론을 제시한다. 중국이 가능했던 건 규모, 속도, 세계화와의 타이밍이 동시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인도와 아프리카는 잠재력은 있지만, 그 공백을 채우기엔 규모도 속도도 다르다. 중국이 만들어낸 것과 같은 수준의 디플레이션 충격을 다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물가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빠지거나 줄어드는 과정은, 세계화 자체의 후퇴와 맞물려 있다. 값싼 외국 노동력에 의존하던 구조가 흔들리면 각국은 자국 내 생산을 늘려야 하고, 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한다.
노동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비용
노동 공급이 줄어드는 건 단순히 "일할 사람이 적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 전체에서 노동 배분이 왜곡되는 문제다.
고령화가 심해지면 특정 영역에 노동 수요가 집중된다. 간병, 요양, 의료 보조처럼 노인을 돌보는 일이다. 이 일들은 기계로 대체하기 어렵고,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문제는 이 인력이 다른 생산 활동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돌봄 노동으로의 인력 재배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생산량을 줄인다. 같은 숫자의 사람이 일해도, 그 일의 구성이 달라진다. 생산성 높은 제조·기술 부문에서 사람이 빠지고, 노동집약적인 돌봄 부문으로 이동한다. 경제 전체의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노동 불균형은 세 가지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총생산 감소, 저축 감소, 그리고 돌봄 서비스 가격 상승. 이 세 가지가 모두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수렴된다.
대역전의 핵심 메커니즘 — 저축이 줄어드는 세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새로웠던 부분이 여기다. 인플레이션이 오는 경로가 "임금 오르면 물가 오른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굿하트가 강조하는 두 번째 경로는 저축 감소다.
경제학의 기본 논리가 있다. 일하는 사람은 버는 것보다 덜 쓰고 저축한다. 반면 은퇴한 노인은 쌓아둔 저축을 소진하며 쓴다. 즉 경제 전체에서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높을수록 저축이 많아지고, 노인 비율이 높아질수록 저축이 줄어든다.
책은 이걸 '의존도비율(dependency ratio)'로 설명한다. 1970~2010년 사이에 의존도비율이 개선됐던 건, 일하는 사람이 부양해야 할 사람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 구조가 저축을 늘렸고, 저축이 늘면 투자 재원이 생기고 금리가 낮아진다.
이제 그 구조가 뒤집힌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해서 저축을 쓰기 시작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경제 전체의 저축이 줄어드는 방향이다. 저축이 줄면 투자 재원이 부족해지고, 수요 대비 공급이 모자라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물가 압력이 생긴다.
임금 경로와 저축 경로,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한다는 게 책의 핵심 주장이다.
금리는 오르되, 방식이 복잡하다 — 명목금리와 실질금리의 분리
"인플레이션이 오면 금리가 오른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책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다.
굿하트는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목금리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오를 것이다. 그런데 실질금리는 여러 상충 요인이 있어서 불확실하다.
더 흥미로운 건 수익률 곡선(yield curve) 예측이다.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가 더 크게 오를 거라는 것. 이유가 있다. 고령화로 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폭증하면 각국 정부는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해야 한다. 그 압력이 장기 금리를 끌어올린다. 반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중앙은행은 단기 금리를 충분히 올리기가 어렵다.
직장인 입장에서 이게 의미하는 건, 변동금리로 장기 대출을 안고 있다면 그냥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단기금리가 내려가도 장기 금리는 계속 높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줄어든다 — 단, 경로가 험하다
책의 부제가 Waning Inequality, 즉 '불평등의 쇠퇴'다. 인플레이션이 오면 가난한 사람이 더 힘들 것 같은데, 왜 불평등이 줄어드나.
논리는 이렇다. 지난 40년간 불평등이 심해진 근본 원인은 노동 공급이 폭증하면서 특히 저숙련·중간 숙련 노동자의 협상력이 무너진 것이다. 중국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노동조합의 힘은 약해졌고, 공장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갔다.
그 흐름이 반전되면, 일할 사람이 귀해지고 노동자 협상력이 회복된다. 특히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직, 돌봄직 같은 분야에서 임금이 올라간다. 상위 소득자보다 중하위 소득자의 임금이 더 빠르게 오를 수 있다.
단, 굿하트는 이 과정이 포퓰리즘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불평등이 심화됐을 때 사람들은 이민자나 외국 노동력을 탓하는 방향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한 것도 이 맥락이다. 경제가 더 공평해지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 앞에 정치적 갈등이 먼저 온다는 것.
부채 덫과 재정의 압박 — 이미 시작된 문제
고령화가 심해지면 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폭증한다. 그 돈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세금 올리는 건 정치적으로 어렵다. 그러면 국채를 더 발행한다. 국채가 늘면 장기 금리에 추가 압력이 생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각국 정부가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재정이 더 악화된다. 굿하트는 이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결국 인플레이션을 일정 수준 용인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고한다.
쉽게 말하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충분히 올려야 하는데, 그러면 정부 이자 부담이 감당 불가 수준이 돼버린다. 딜레마 속에서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채 어중간한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구 대역전』은 무서운 책은 아니다. 경고하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금리와 물가 압력이 중앙은행의 실수나 일시적인 충격 때문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인구 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디플레이션 엔진이 꺼지고 있고, 노동 불균형이 만드는 경제적 비용은 이제 막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게 맞다면, 이 상황은 금리 한두 번 내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인구가 바뀌지 않는 한 흐름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
직장인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크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 포트폴리오가 저금리·저물가 시대에 최적화되어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면, 그에 맞게 생각의 틀도 바꿔야 한다.
인구 대역전은 이미 시작됐다.